한겨레 칼럼 [삶의 창] ‘우리나라 사람’, 코다를 만나다

2016/08/20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아빠는 농인 국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농인이 세계 곳곳을 수어로 소개하는 내용의 비디오를 보며 외국의 농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건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한국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인이 아니라,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라마다 사용하는 수어가 다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영국의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캠프에 들어서자 100명 남짓한 코다들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영어와 영국 수어, 국제 수어와 한국 수어를 섞어 소통했다. 나는 내가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정체성을 지닌 코다였다.

저녁 프로그램은 탤런트 쇼였다. 누가 영국 아니랄까 봐 해리 포터 분장을 한 아이가 있었고, 옆에는 헤르미온느도 있었다. 줄무늬 옷을 입은 월리도 있었고, 호나우두 가면을 쓴 소년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농인의 소리가 들렸다. ‘이 캠프에 농인이 있었나?’ 하고 쳐다보니 아까 음성언어를 사용하던 남학생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농인이 수어를 할 때 내는 소리를 냈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암 데프”(I’m Deaf)라고 말하며 검지와 중지를 펴 귀와 입에 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깔깔 웃으며 수어로 대답했다. 마치 농인들처럼 말이다. 당황한 우리가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묻자, 그는 탤런트 쇼에서 입을 옷을 가져오지 않아 ‘농인인 척’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흉내가 얼굴 표정, 유창한 수어, 문장의 내용, 발음까지 어디 하나 어색한 곳이 없었다. 놀라웠던 것은 아무도 그 행위를 장애인 ‘조롱’이나 ‘비하’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역할 놀이’였다. 친구와 대화하다 갑자기 부모를 흉내 내고 농인인 척하는 일. 그것을 나쁜 의미의 ‘장애인 흉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나도 종종 부모의 흉내를 낸다. 아빠가 나를 혼낼 때 쓰는 “뻡!”이라는 소리를 가성을 섞어 내고, 농인이 주로 사용하는 문장을 따라한다. 하지만 오로지 동생과 나 사이에서만 가능했다. 부모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역할 놀이’인 것이다.

캠프 이후, 코다 언니와 런던의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수어가 모어고, 두 번째로 음성언어를 배운 이중 언어 사용자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언니에게 손을 흔들어 수어로 말했다. 또한 음성언어로 긴 문장을 만들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이유에서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수어와 음성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눈을 보고 대화했다. 목 아프게 계속 음성언어로 대화할 필요가 없었고, 상황에 따라 훨씬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를 바꿔가며 사용했다. 그 놀이에 재미가 들린 우리는 농인들이 사용하는 문장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짧게 수어 얼굴 표정 입 사용 좋아. ‘아’(청인)들 맨날 말 길게 불편”

“맞다구 정말 입 왜… 손 하다면 편하고 재밌고 좋아”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두 가지 언어와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는 이를 만나는 것,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소통. 그것이 나에게는 ‘코다와의 만남’이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제야 ‘우리나라 사람’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7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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