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비정상 가족의 차례 폐지 혁명

2016/09/24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이제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집안의 유일한 장남인 동생이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해서 집에 내려가지 못한다고 했다. 집에는 할머니, 엄마, 아빠, 작은아빠, 사촌동생 두 명이 있었다. 할머니는 머리를 더 짧게 자른 나를 보고 “외국을 많이 다니더니 이제는 정말 외국놈 같으다”라고 했다. 나는 ‘외국년’이 아니라 ‘외국놈’이냐며 깔깔 웃었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분주하게 상을 차렸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일주일 내내 준비한 음식을 내어놓았고, 할머니는 손짓과 입 모양을 동원하여 간장이 빠졌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수어로 통역했다.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례에 대한 책을 보고 있었다. 또 잊어 먹었냐며 할머니는 아빠에게 핀잔을 줬지만, 농인(聾人)인 아빠는 그것을 들을 수 없어 껄껄 웃기만 했다.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차례상이 차려졌다.

“보라야, 네 엄마한테 통역 좀 해라. 예전에는 이렇게 속이 훤히 비치는 송편을 쓰면 안 되고 하얀 송편을 써야 했어. 그런데 이제는 간단하게 치르니까, 그냥 둬.”

엄마는 깜짝 놀라 “그럼 이 송편을 치우고 다른 것으로 가져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새끼손가락을 턱에 대고 두 번 댔다. ‘괜찮다’는 수어였다.

“보아!”

아빠는 어색한 발음으로 나를 불렀다. 차례를 지내려면 양쪽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동생이 없으니 내가 대신 서라는 것이었다. 난생처음이었다! 이제는 집안에 남자가 없어 내가 차례를 지내게 되다니! 내가 엉거주춤하며 술을 따르자 뒤에서 보고 있던 사촌동생 둘이 깔깔 웃었다. 할머니는 제사상 앞에서 왜 그리 소리 질러 웃느냐고 야단을 쳤다.

“할머니, 얘네 둘이 깔깔 웃어도 어차피 여기 다 농인이라 못 들어. 할머니랑 나만 괴로운 거야.”

나는 입과 손을 동시에 움직이며 말했다. 누가 보면 정말 엉망진창인 집안이었다. 이제는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와 사회적으로 ‘청각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엄마, 아빠, 작은아빠, 사촌동생 둘. 연휴에도 일하느라 내려오지 못한 동생.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외국년인지 외국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년까지. ‘정상’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집안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 후, 할머니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가에서 온 고모는 중대한 안건이 있다고 했다. 내용인즉슨, 이제부터 명절에 차례 지내는 것을 그만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그것을 통역했다. 그러자 모두가 숨죽이며 할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이제 오래 이동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그만하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작은아빠는 “적극 찬성”이라고 발음하며 수어로 ‘오케이’라고 했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눈치를 보다가 괜찮다고 했고, 아빠는 조상님이 화나서 천벌을 내리면 어쩌냐고 웃었다. 일사천리로 모두가 긍정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헐, 대박!”

나와 사촌동생의 환호성으로 안건이 가결되었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괴로웠던 것이다. 명절이라 비싼 제수를 장만하느라 큰돈을 쓰는 것도, 유전자변형식품(GMO) 식용유로 전을 부치고 그것을 먹는 것도, 귀성길에 차량 정체로 스트레스 받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이제부터 기제사만 지낸다. 대신 명절 전에 모여 성묘를 하고, 연휴에는 모두가 행복한 여행을 할 것이다. 비정상 가족의 가장 비정상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가장 정상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24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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