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새로운 광장의 언어

2016/12/17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2008년, 열아홉살의 나는 촛불을 처음 들었다. 때는 이명박 정권이었고 나는 로드스쿨러였다. 정부의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길’에서 배움을 찾던 나는, 유모차를 끌고 도로를 행진하는 이들을 보았다. 또한 교복을 입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을 만났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얼마간의 거리행진 후 ‘명박산성’에 가로막히면 사람들은 컨테이너 앞에 앉아 정치의 장을 열었다. 흥미로웠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민주주의’가 어떻게 ‘길’에서 작동하는지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었다. 당시 투표권도 없던 나에게 광장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로부터 8년 후, 나는 촛불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6차 집회가 있던 날, 경찰은 ‘평화로운 집회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폴리스라인을 쳤다. 사람들은 청와대 분수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방송 차량 위에 올라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한 청년은 “지금 경찰이 하는 일을 보니 너무 자랑스럽지 않아, 직접 경찰이 자랑스러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나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청년은 서울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 싶어 이틀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차비를 벌었다고 했다.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모두가 ‘발언’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본무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쩌면 각 길목의 자유발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장갑을 챙겨 오지 못한 나는 촬영을 하다 말고 종종 언 손을 호호 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손이 이렇게 차가워서 어쩌냐”며 쥐고 있던 장갑을 벗어 주었다. 핫팩 봉지를 뜯어 주머니에 넣어 주기도 했다. 체력이 떨어져 이마에 손을 얹고 있자, 중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쭈뼛쭈뼛 다가와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펴보니, 직구까지 해서 먹는다는 녹차맛 킷캣 과자가 쥐어져 있었다.

내 옆에 선 촛불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손은 시리지 않은지, 우비는 있는지 사려 깊게 들여다보던 이들은 광장의 새로운 언어를 고민한다. ‘병신년 박근혜’의 장애인 비하가 왜 잘못된 것인지, ‘닭근혜’라고 부르며 동물을 풍자의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미스 박’ 표현에 내포되어 있는 여성 혐오는 어떤 것인지 사유하기 시작했다. 디제이디오시(DJ DOC)의 촛불집회 공연 취소 역시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과 박근혜 퇴진 요구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의 결정이었다. 누군가는 현장에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 말했고, 어떤 이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자막 통역으로 청각장애인의 알 권리를 보장했다. 기존의 정부와 정치체제에서는 볼 수 없던 언어들이 새롭게 광장에 등장했다.

얼마 전, 홍콩의 우산혁명 당시 수만명의 사람들이 수어로 다함께 렁춘잉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옆 텐트에 묵는 농인들에게 수어를 배웠고,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음성언어와 수화언어로 ‘퇴진’을 외쳤다. 이렇듯 새로운 광장의 언어는 가능하다. 대의민주주의가 감히 품지 못하는 다양한 광장의 목소리들을, 오늘도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모색해보자. 광장의 새로운 언어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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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4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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