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생리컵과 바이브레이터

2017/01/14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며칠 전, 홍콩에 다녀왔다. 함께 간 친구는 생리컵이 필요하다고 했고, 우리는 시내의 한 성인용품점에 들렀다. 매장에 들어서니 파스텔톤의 섹스 토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커플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사장과 점원(스타일리스트라 부른다)이 새로 들어온 남성용 바이브레이터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생리컵의 종류와 색상은 꽤나 다양했다. 친구가 어떤 것을 살지 고민하자, 스타일리스트가 “생리컵이 처음이라면 재질이 부드러운 제품을 추천한다”고 말을 건넸다. 생리컵 9년 차인 나도 거들었다.

나는 19살에 처음 생리컵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이 생리대 대신 써보라며 보여준 그것은 가히 ‘혁명’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에 피가 고인 생리대를 차고 다니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때였다. 청결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리대를 자주 갈아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무수한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딱히 대안이 없었고, 나는 생리대를 사고 버리며 자괴감을 느꼈다. 그런데 생리컵은 그 모든 고민을 날려버리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나는 단돈 4만원에 생리대를 더 이상 사지 않아도 되었고, 생리의 양과 핏빛을 체크하며 나의 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너무 편리했다.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 가사노동의 해방을 가져왔다면, 생리컵은 여성 해방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생리컵을 전도했다. 여성이고 남성이고 가리지 않았다. 여성에게는 ‘여성 해방’을, 남성에게는 “애인, 엄마, 누나, 여동생에게 생리컵을 선물하는 훌륭한 남성이 되라”며 사상을 전파했다. 대부분이 질 안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을 주저했지만, 써 본 이들은 모두 여성 해방 전선에 합류했다.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2016년, 페미니즘의 열풍과 함께 생리컵의 시대가 도래했다. 날이면 날마다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생리컵을 예찬하는 후기가 올라왔고, 오프라인에서도 심심치 않게 ‘너 그거 알아?’로 시작하는 입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국내 생리컵 생산 업체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외품 품목 허가·신고 심사 규정에 따라 생리컵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이 생리컵을 의료기기로 분류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처사였다. 그래서 많은 언니들이 다시 ‘직구’를 하기 시작했고, 생리컵 열풍은 잠시 주춤했다.

친구는 나의 추천에 따라 비교적 크기가 큰 생리컵을 구매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우머나이저’를 발견했다. 독일산 바이브레이터로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인생 최고의 오르가슴’이라는 수식어로 입소문을 탄 그것이었다. “오, 이거 봐. 대박!” 우리는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바이브레이터를 만져보며 깔깔댔다. 스타일리스트는 각각의 토이가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나는 친구에게 나의 성적 취향을 공유했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쩐지 후련했다. 사뭇 놀랍고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한국에도 여성 친화적 성인용품점이 여럿 생겼다고 들었는데 ‘과연 헬조선에서 거리낌 없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에서 그랬듯, 누구나 수치심 없이 생리컵과 바이브레이터, 콘돔을 사러 갈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서 우머나이저를 샀고, 인류 최고의 발명품 리스트에 올리기로 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86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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