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상대적 박탈감의 사회

2017/02/1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얼마 전, 이사를 했다. 공기도 좋고 동네 분위기도 맘에 든다. 성북구의 공공주택인 이곳엔 다양한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아직은 서먹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과 사니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월세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으리으리하게 넓은 집은 아니어도 한동안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지원했지만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미안해했다.

10대 후반부터 ‘주거’는 나의 화두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 지하에 살았다. 이후 기숙사로 옮겼고, 학교를 그만둔 후에는 게스트하우스의 다인실을 전전했다. 서울에 살고 싶어 하숙을 했고, 기숙사에 살았고, 자취를 했다. 보증금이 없었기 때문에 월세를 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큰돈을 떡하니 내주는 부모를 가진 이들을 시기했다. 나는 갖가지 알바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매일 인터넷에서 방을 검색했다. 그러나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매물을 보면 볼수록 우울해졌다. ‘주거’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인생 자체가 버거웠다. 그러다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사업을 알게 되었다. 지원 서류가 꽤나 까다로웠다.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만 신청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원을 받게 되어 기쁜 맘으로 부동산을 찾았다. “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집을 찾는데요” 입을 열자마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부동산을 돌고 또 돌았다. 한 중개업자는 “안 그래도 전세가 없는데 어디서 전세를 찾냐”며 혼을 냈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래도 월세 부담이 덜하지 않냐며 부러워했다. 그래, 그렇긴 하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렵사리 구한 집에서 2년을 살고, 다른 집에서 2년을 살았다. 월세 부담을 더니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니 또 집이 문제였다. ‘주거’가 나의 10대와 20대를 짓눌렀다. 그러다 공공주택의 면접을 보러 갔다. 대부분이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연극을 하는데 원룸에 산 지 이십 년째예요. 모아둔 돈도 없고요.” 가슴이 무너졌다. 면접장의 분위기가 휘청, 했다. 가난을 증명하고 경쟁하는 분위기였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내가 돈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는데. 차례가 돌아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타협을 해야 했다.

한 달 후, 입주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당분간은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주거의 문제가 해결되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월세를 버는 시간에 신문을 펼쳐보며 세상 걱정을 했다. 기본소득이 왜 중요한지, 프랑스의 주택보조금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데, 하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열 수가 없다. 친구들은 여전히 월세를 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런 문구가 적힌 쪽지를 보았다.

<죄송한데 공시생인 것 같은데 매일 커피 사 들고 오시는 건 사치 아닐까요? 같은 수험생끼리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져서요>

나는 옆 사람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나 대신 다른 이를 탈락시키며 아득바득 살아내고 싶지도 않다. 공공주택에 살고 기본소득을 받으며 세상 걱정을 하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는 더 이상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31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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