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몰카 공화국’의 하루 / 이길보라

2017/04/15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몰카’를 당한 적이 있다. 모 영화제에서 관객 숙소로 사용하는 유스호스텔의 공용 샤워실이었다. 옷을 벗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그 사이로 핸드폰을 든 팔이 보였다. 몸을 구석으로 피한 후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고, 알몸이라 쫓아갈 수가 없었다. 로비로 내려가 관련 사항을 신고했고, 경찰서에서 내용을 진술했다. 경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참고하겠지만 기기가 낡아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찰칵’ 소리를 들었는지 물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묻자 촬영 여부가 중요하다고 했다. 못 들었다고 했더니 그럼 범죄 사실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뭐라고요?”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풀리려고 하자, 친구들이 동영상일 확률이 크다고 했다.

진술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 직원은 샤워실 뒤쪽 출입구를 막았다고 했다. 나는 “재발의 가능성이 있고 범인을 잡지 못했으니 공지를 해달라”고 했다. 또한 최소한의 격리 조치를 요청했다. 그러자 다른 숙소를 알아봐 주는 건 어렵고 다른 객실 배정과 사우나 무료 이용 티켓을 주겠다고 했다. 영화제 쪽은 우리를 ‘블랙 컨슈머’처럼 쳐다봤다. 불쾌했다.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다른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명민하고 믿음직스런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왜 경찰과 숙소 쪽은 그러지 못했나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그래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몰카를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고, 많은 수가 공유되었다. 그런데 악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언론매체에 ‘여감독, 샤워실에서 몰카 당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대문짝만한 프로필 사진도 함께였다. 당황스러웠다. 이후 약속이나 한 듯 타 매체들이 비슷한 기사를 찍어냈다.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아직 용의자를 못 잡았고 2차 피해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그렇게 드러내는 것이 옳으냐 물으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직접 글 올리셨고, 국민들은 이걸 알 권리가 있어요.”

그 기자는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어떤 기자는 기자회견 한 거 아니냐며 거기 다녀왔다고 거짓말도 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못생긴 게 지랄이다’ ‘줘도 안 봐’ ‘소라넷 뒤져보면 있겠네ㅋ’

나는 괴롭다 못해 명예훼손 신고를 하기 위해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그런데 신고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이름 인터넷에 치면 나오네요. 그럼 ‘공인’인데, 공인에 대해서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죠.”

총체적 난국이었다. 몰카를 찍은 놈도, 소극적인 대응의 경찰도, 매뉴얼이 없는 숙소 쪽도,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언론도, 인신공격성 댓글도. 모두 다 엉망진창이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지난달 31일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사인회에서 한 멤버가 직접 몰카가 달린 안경을 쓴 남성 팬을 잡았다.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에서 몰카 판매 금지 법안 제안을 했고, 지금까지 1만5211명이 참여했다. 여성들은 명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끔찍한 것은 변하지 않는 소극적인 대응, 그래서 때로는 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대응이다. 여전히 시계, 선글라스, 볼펜, 유에스비(USB)에 ‘몰카’가 달려 팔리고 있고, 누군가는 언제 어디서든 타인을 훔쳐보는 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착각한다. 나는 이 끔찍한 몰카 공화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07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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