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값싼 동정과 자존감 사이

2017/07/0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농인 부모의 아름다운 세상을 딸의 시선으로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지난달 일본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개봉을 했으니 2년 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자녀)인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 상영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가령 관객과의 대화(GV)를 위해 주인공 농인 부부가 등장했을 때 영화관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지 고민해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어떤 관객은 극장에 갔더니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로 가득했는데 자신은 알 수 없는 그 언어 사이에 둘러싸여 ‘타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며 영화 외적으로도 생경한 체험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현지 배급사는 농인 역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화에 배리어 프리 자막을 삽입했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자막으로 영화의 소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개봉 2주차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부모님이 감독인 나와 함께 무대 인사를 했는데, 언어가 무려 네 가지였다. 일본 음성언어, 일본 수어, 한국 수어, 그리고 한국 음성언어.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의 절반은 일본 농인이었고, 절반은 일본 청인이었다. 영화 상영 후 무대인사 행사에는 네 명의 통역사와 장비들이 배치되었다. 무대 좌측에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회자가 있었고, 그것을 일본 수어로 통역하는 A가 있었다. 그 옆에는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엄마·아빠, 한국 수어와 한국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나, 일본 음성언어와 한국 음성언어를 통역하는 B가 나란히 섰다. 무대 뒤 스크린에서는 한국 수어를 읽어 일본 수어로 통역하는 C의 얼굴이 보였다. C는 무대의 수어를 볼 수 있도록 관객석 앞쪽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와 빔 프로젝터가 C의 수어를 실시간으로 촬영해 스크린에 투사했다. C 앞에는 일본 수어를 읽어 일본 음성언어로 통역하는 D가 앉아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설명하기 복잡한 시스템이었지만 훌륭한 세팅 덕분에 모두가 말하고 들을 수 있었다. 관객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무대 앞으로 나와야만 했다. 관객석에 앉은 농인의 경우, 누군가 객석에 앉아 질문을 하면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잘 말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상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자유롭게 질문을 했고, 네 가지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일본 농인들은 한국 농인의 삶이 그네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수어가 비슷하여 놀랐다고 했다. 농인 부모와 영화를 보러 온 코다도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통역사로서의 역할, 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서로 다른 네 가지 문화 사이에서 수어는 미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몸짓이 아닌 완전한 ‘언어’가 되었고 농문화는 온전한 ‘문화’가 되었다.

한국에서 영화를 상영했을 때, 혀를 쯧쯧 차며 나와 부모를 동정하던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저는 불쌍하지 않아요” “독립영화 많이 봐주세요” 하고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런데 왜, 나는 농인 부모를 뒀다는 이유로, 독립영화를 한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것일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1923.html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