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부채감의 사회

2017/08/05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열아홉 살의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 본 몇몇의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중 하나는 김일란 감독의 <3×FTM>이었다. 세 명의 에프티엠(FTM, Female To Male.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을 다루는 이 영화는 내 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영화관을 나오며 ‘FTM’이라는 글자를 노트에 적었다.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 교회를 다녔던 내게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것은 그 자체로 ‘죄’였다. 그러나 ‘태어났을 때부터 남자였다’고 말하는 영화 속 주인공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날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전부였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다른 이의 삶을 단죄하는 것이 가능한 건지, 그럼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교회로 가 동성애가 왜 죄인지를 물었고, 교회와 불화했다. 오만가지 질문이 생겨났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럽고 추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영상 활동가와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으로 만든 영화가 좋았다. 그곳에서 그들이 쌓은 친밀감과 거리는 영화 속에 오롯이 드러났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내가 가지 못한 현장을 만날 수 있었고, 영화를 통해 어떤 이의 얼굴 표정과 찰나의 순간 같은 것들을 보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동료와 스승이 필요해 대학에 입학했다. 많은 사람과 좋은 영화를 만났지만, 그것만으로 다음 영화를 찍을 수는 없었다. 제작비가 필요해 여러 곳에 제작 지원 신청을 하고, 피칭을 했다. 누군가는 “학생 영화인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 그냥 찍어”라고 했다. 무수하게 떨어지고 떨어진 끝에 촬영 장비와 교통비를 마련했다. 인건비는 거의 책정하지 못했다.

미안해하며 두 번째 영화를 찍었다. 세 번째 영화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포함한 제작진 모두가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현장을 지키지 못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에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때에도 단 몇 번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었다. 마음속 깊숙이 부채감이 생겼다.

얼마 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고, 박근혜 퇴진 운동의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비보를 들었다.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 <3×FTM>의 김일란 감독님은 위암 판정을 받았다. 장애인운동 현장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을 지켰던 박종필 감독님은 간암 말기로 황망히 돌아가셨다. 그의 유언은 ‘미안하다’였다고 한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때 한 번이라도 현장에 더 나갈걸’ 하고 미안했고, 국가가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키려다 자기가 부서지고 마는 이들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국가가 지키지 못한 이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왜 국가는, 시스템은 이들을 지키지 못하는가. 나는 이런 부채감을 계속해서 가져가야 하는 것일까. 나/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미안해해야 할 주체는 국가이자 시스템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영화를 계속 보고 싶고, 그들과 함께 차별에 저항하며 싸우고 싶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5589.html#csidx4bbec1a6ea42c529e4ea5b07eb05e57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