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크라우드 펀딩 장학금 모집 중

2017/09/02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은행 계좌도 열었고 중고 자전거도 샀다. 어제는 네덜란드의 임대주택 회사에서 공급하는 방을 계약했다.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한국 시간으로 밤이 되면 자꾸 잠이 온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예술대학 소속인 네덜란드 영화학교에서 석사 전공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2년간 여기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유학을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왜 암스테르담인지, 무슨 돈으로 공부를 하는지 궁금해했다.

작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독일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거쳤다. 암스테르담은 그중 가장 자유로운 도시였고, 이방인에게 친절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영화학교의 인상이 매우 좋았다. 지도를 보다 보니 숙소 근처에 학교가 있었고, 유학을 고민하던 나는 무작정 학교를 방문했다. 학과장이 나의 대책 없는 방문을 흔쾌히 받아주었고, 석사 과정에 대한 상담도 받았다. 그렇게 원서를 준비했고, 서류 심사에 합격해 면접을 봤다. 그들은 내게 왜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한국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다. 책 작업도 해보고, 영화를 만들어 배급하고 개봉하는 경험도 해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자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다음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무엇을 기반으로 어떤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작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겨났다. 일단 네트워크의 확장과 더 넓은 경험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고, 유럽의 작업자들은 어떻게 작업을 해나가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암스테르담은 일 년에 한 번씩 규모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면접을 무사히 마쳤고, 학과장에게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학교의 추천으로 네덜란드 정부 장학금을 받게 되어, 학비는 면제받았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백방으로 국내외 장학금을 알아보았지만 예술, 심지어 순수예술도 아닌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을 위한 장학금은 어디에도 없었다. 외국의 경우는 꽤 있었지만 대개 자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장학금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모두가 국내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말했고, 정말로 그러했다. 떠나는 날이 다가왔고 결국 장학금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크라우드 펀딩을 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이길보라의 유학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장학금. 목적은 보라가 아르바이트를 덜 하고 책과 영화를 더 찾아보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 리워드는 없음. 대신 사회에 좋은 영화와 글로 환원하겠음. 그렇게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펀딩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척 중 한 명이 전화를 했다. “너, 크라우드 뭐 한다며? 아니, 알바를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지 무슨 후원을 받아, 후원을.” 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씩씩거렸다. 나는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훔치는 것도 아니다. 빨갱이도 아니다. 다만 장학금과 생활비가 필요할 뿐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허리가 휘어지도록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는 않다. 세계 곳곳에는 학비가 없으며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학비를 면제해주고 넉넉한 장학금을 주는 곳들이 있다. 한국의 상황이 그러하지 못하다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을 것이다. 그에게 분해서라도 더욱더 열심히 장학금을 모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유학도 꿈꿀 수 없는 세상은 불평등하다. 그리하여 나의 크라우드 펀딩은 아직도 절찬리에 모집 중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93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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