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다양성의 공간

2017/09/30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올해 봄, 네덜란드 영화학교로부터 서류 심사에서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을 받았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화상 채팅으로 면접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교 측은 “우리는 그룹이 중요하기 때문에 면접을 통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키가 큰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나를 반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학장이 물었다.

“여기 입학하게 되면 구성원에게 어떤 걸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작업을 해왔고, 여기서 어떤 걸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어떤 걸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고심하다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온 여성으로서 다른 시각과 관점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열 명이 모였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동기들의 간략한 정보를 받았다. 이름과 국적, 간단한 이력이 쓰여 있었다. 여섯 명이 네덜란드인이었고, 나머지 네 명이 스페인, 덴마크, 스위스, 한국이었다. 생각보다 꽤 단조로운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중동과 동유럽 사이 어딘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스테판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8살 때 미국으로 가 10년 정도를 살았다고 했다. 국적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는 정말 이상한 질문이라고 하며 두 손과 어깨를 살짝 올렸다.

“부모님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고, 나는 여기서 태어났지만 10년 동안 미국에 있다 온 거라 모르는 게 더 많아. 동생은 멕시코에 살고, 아빠는 하와이에, 엄마는 곧 여기로 올 거야. 네덜란드 여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내가 어디서 왔는지, 국적이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18살 때 네덜란드로 온 야핏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네덜란드 국적을 갖고 있는 리나도 그랬다. 스위스인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말라이나, 스위스 남부의 이탈리아 국경 부근에서 자란 조지아까지. ‘국적’으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과 문화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나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의 것과 달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는 문장이 여기서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건 그냥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것’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사진을 찍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게 된 에얄 시반 감독은 워크숍을 진행하며 물었다. 누가, 무엇이 역사를 결정하는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무엇이 픽션이고 무엇이 논픽션인가. 그 경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그 구분과 정의는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가.

나는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이 문화들의 레이어(층위) 속에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 온 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한 번 더 아시아의 관점을 주목하고, 덴마크에서 온 피터가 있기 때문에 북유럽과 네덜란드 사이의 지점을 고민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룹’과 ‘구성원’이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3196.html#csidx2d61c92c20c7df1b9c39faa6fbc9a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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