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프로불편러의 서울

2017/11/04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인천공항에서였다.

올해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는데 그건 새로 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때문이기도 했다. 귀를 덮는 차폐식 헤드폰은 말 그대로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소리에 민감한 내가 서울이 너무 시끄럽다며 고통을 호소하자, 지인이 “서울을 조용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귀를 막아보는 건 어떠냐”며 소개해준 것이었다.

가격 때문에 반년을 고민했다. 구입하고 난 후에는 고민했던 지난 반년을 후회했다. 신세계였다. 헤드폰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주변 소음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신 건강이 회복될 정도의 소음 차단이었다.

공항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줄을 섰다. 최근 몇년 전부터 줄을 서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는데, 마치 내게 말을 하는 듯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때문이었다. 줄을 설 때면 더 심했다. ‘빨리빨리의 민족’은 누구보다 앞서가기 위해 앞사람과 몸을 밀착하며 줄을 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고, 무사히 그곳을 지나기 위해 귀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선 사람들이 자꾸만 내 가방에 몸을 기댔다. 불편했다. 어차피 한줄 서기라 밀착하며 줄을 선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몇번이고 참을 인 자를 그렸다.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몸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발을 쿵쿵 굴러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 정말 소리를 지르거나 저 사람들을 때릴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해 이상행동을 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런 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요. 조금만 떨어져서 서주실 수 있을까요. 몸이 너무 붙어서요.”

이윽고 나는 인천공항 미친년이 되었다. 아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떨어져서 줄을 서느냐며 사람이 서로서로 이해하고 살아야지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헤드폰을 끼고 등을 돌렸다. 미처 차단되지 못한 분노와 화가 들려왔다.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해 “죄송한데 다 들린다”고 그만하시라고 하자, 두 모녀가 바통을 주고받으며 손가락질을 하면서 욕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봤고, 나는 창피하고 억울했다. 혼자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이 구역 미친년이 되어 아줌마랑 싸우고 싶은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내가 이 사회에서 이만큼 불편하고, 그래서 자칫하다가는 당신을 때릴 것 같으니 이만큼만 양해해달라고 했던 건데 그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고 참담했다. 서울에서 살아갈 만큼 충분히 무뎌지지 못하는 내가 싫었고, 당분간은 여기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빨개진 얼굴로 울음을 참았고, 두 모녀는 그곳을 빠져나가기까지 나를 노려봤다. 나는 출국 도장을 찍고 그곳을 나오자마자 엉엉 울었다.

나도 안다, 나 예민한 거. 엄마도 내게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했다. 맞다. 그래서 못 살았다. 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민감하고 까칠한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한국이었으면 좋겠다. 나 같은 프로불편러 개인주의자들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한국 사회라면 정말로 좋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73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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