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유연함의 사회

2017/12/02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수업시간이 10시에서 10시30분으로 바뀌었다.

이곳 네덜란드 영화학교의 석사 과정은 열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중심으로 매번 새로운 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연구를 발전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첫째 주에는 향후 2년간 함께 공부해나갈 그룹이 중요하니 연기 워크숍을 통해 서로의 몸과 움직임을 파악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는 누가 네덜란드 아니랄까봐 배에서 나흘간 생활하며 밥을 지어 먹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질리도록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중적인 세미나형 워크숍이 아침 열시부터 저녁 대여섯시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스케줄이었다.

학기 중반이었을까, 동기 중 두명이 전체 수업시간을 10시30분으로 조정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유인즉슨, 로테르담과 델프트에서 학교가 위치한 암스테르담까지 오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교통비가 비싸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을 늦추면 출퇴근 시간 이후에 적용되는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럼 무료로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열명의 학생 중 두명의 생활비 절감을 위해 대학원 수업시간 전체를 바꾼다고? 생소하고 낯선 제안이라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낸 후 반응을 지켜보기로 했다. 조교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동의했고, 교강사들은 우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수업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변경되었다. 흥미로웠다.

얼마 전에는 시리아 영화감독 오사마 무함마드의 특강이 있었다. 파리에 살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관한 영화 <은빛 수면, 시리아의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1001명의 시리아인들에 의해 촬영된 영상을 모아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폭탄으로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시멘트 먼지에 뒤덮인 고양이가 다리를 잃은 채 절뚝이며 걸었고, 폭탄 파편에 맞아 죽은 말들이 거리에 누워 있었다. 건물 사이로 총에 맞아 쓰러진 주민을 구하기 위해 긴 철사를 거리로 던지는 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들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요란한 비닐봉지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학교의 주요 강사 중 한 명이었다. 이스라엘 출신인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꽤 유명한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우리 아빠 나이뻘 되는 남성인 그는 맛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미세한 소리도 아주 크게 들리는 작은 강의실이었다. 스크린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심지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이 그에게 눈치를 주었다. 수업시간에 도시락이나 과일을 먹는 것은 이 학교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으나 이 상황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 주의를 받은 그는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갔고, 우리는 말도 없이 사라진 그의 행동을 의아해했다. 얼마 후, 그로부터 단체 메일이 왔다.

사과문.

모두에게. 지난 특강 중 내가 무언가를 시끄럽게 먹어 충격을 받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영화 상영 중 제가 저질렀던 저속한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면 정중히 사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알려주십시오. 저는 여전히 배우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학교 건물은 밤 9시만 되면 ‘유연함 없이’ 문을 닫는다. 모두가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갇혀 밤을 지새워야 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그럼 이만 줄이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16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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