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2017/12/30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악몽을 꿨다. 중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꿈이었다. 며칠에 걸쳐 시험을 보는데, 수학과 과학 시험을 치르다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수학 과목의 경우 겨우 한 문제를 풀고 답안지에 마킹을 했고, 과학은 빈 답안지를 내야 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 어서 한 문제라도 풀라며 시간을 더 주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이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문제를 풀었다.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객관식 시험을 치르고, 1학년을 다니고 그만두었던 고등학교에 복학하는 꿈은 자주 꾸는 악몽 중 하나다. 야심 차게 학교를 자퇴했어도, 졸업한 지 십여년이 지났어도, 지구 반대편의 네덜란드에서 지내고 있어도 그 꿈들은 여전히 나를 찾아온다.

네덜란드 영화 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끝났다. 기말 발표를 했고, 그에 따른 연구 자료들을 제출하고 면접을 봤다. 결과는 패스, 학점이 따로 없는 구조다. 정확하게는 통과와 미달을 구분하기 위한 점수가 있지만 그것은 연구원(이곳에서는 ‘학생’이라는 호칭을 선호하지 않는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석사 과정은 열 명의 동기들과 세미나 방식의 워크숍들을 함께 하며 자신의 연구 주제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발전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연구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이와의 비교를 통해 점수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워크숍이 끝나면 강사로부터 ‘학점’이 아닌 정성스러운 ‘피드백’ 메일을 받는다.

기말고사도 마찬가지다. 면접관들은 내가 제출한 자료와 발표를 들여다보고 그에 따른 의견과 질문을 준비한다. 우위를 분별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관점에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과 같은 질문들이다. 또한 면접은 혼자 보지 않는다. 나의 연구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켜봤던 멘토가 면접에 동행한다. 그는 내가 면접을 보는 동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볼 수 있다. 이후 내가 잠시 나가 있는 동안 나 대신 대답을 하거나 추가적으로 면접관의 조언을 듣는다. 내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옆에서 지켜 보고 그에 맞는 멘토링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접관은 사려 깊은 격려와 함께 첫 학기 통과 여부를 알려준다. 물론 나도 관련된 질문과 피드백을 할 수 있다. 미달하는 경우, 한번 더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몇주 후 기말고사와 관련된 피드백 메일을 받게 된다. 이것이 영화 학교에서 치른 첫 학기 시험이었다.

학부 시절을 되돌아보면 매일같이 캠퍼스를 뛰어다녔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나마 한국 사회에서 자유로운 축에 속하는 예술 학교였고,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원칙으로 학점이 매겨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출석률’이었다. 학점을 매기기 위한 가장 객관적인 지표가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학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성적 장학금은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캠퍼스를 뛰어다녔다. 설령 그것이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건 자연스럽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되어 악몽과도 같이 남아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악몽을 덜 꾸기를 바란다. 대신 배움과 학습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이 자리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들이 배움에 대한 설레는 꿈을 꿀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5614.html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