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타기

2017/01/27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며칠 전, 엄청난 강풍을 동반한 겨울 폭풍이 네덜란드를 강타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이착륙 예정이었던 항공편 268편이 결항하고 기차를 비롯한 버스, 트램 등의 교통편에 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알림을 받았다. 기상 경보는 가장 심각한 단계를 의미하는 ‘코드 레드’였다.

지난달, 폭설이 내렸을 때의 경보 단계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코드 오렌지’였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이 오렌지색이기도 하고 ‘나는 시베리아보다 더 추운 한국에서 왔는데 뭐 폭설 정도야’ 하고 코웃음 치며 자전거를 끌고 나가서는 시내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경험으로부터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바 있어 이번에는 몸을 사리기로 했다. 물론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암스테르담의 운하와 시가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겨울, 절경이었다.

그러나 프레임 바깥은 현실이었다. 눈은 자꾸만 내 눈 속으로 들어가 앞을 볼 수 없었고, 손은 꽁꽁 얼어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전거는 자꾸만 미끄러져, 앞을 걸어가는 행인과 다른 자전거, 자동차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러다간 얼어 죽겠다 싶어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으려니 창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폭설이 내려도, 코드 오렌지 경보가 떨어져도 자전거는 타야만 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인구수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은 나라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녀노소 불구하고 누구나 자전거를 탄다. 그건 코드 레드 경보가 내려도 마찬가지다.

대학원 과정 워크숍이 있어 학교에 가야 하는데 당일 아침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었다. 이제부터는 자연의 힘을 경외하기로 했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하고 트램 정거장으로 향했다. 운하를 지나는데 그곳이 바람 골이었는지 만화 속 한 장면처럼 그만 바람을 타고 날아갈 뻔했다. 트램에 올라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어 방송이 들렸다.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다. 영문을 몰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강풍이 불어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 트램. 노 버스. 노 트레인. 오마이갓. 학교까지는 걸어서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혹시 다른 노선의 트램은 운행을 하나 싶어 근처 정류장에서 다른 트램을 탔다. 그러나 또다시 운행을 멈췄다. 실소를 하며 동기에게 전화하니 이제 곧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도대체 너희는 어떻게 학교를 갔느냐고 물으니 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강풍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나무가 뽑히고 자전거가 날아가는 판에 자전거를 탔다니! 이제부터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은 네덜란드인들 역시 경외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도심 한가운데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빨간색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네덜란드영화학교 대학원 과정 학장이었다. 학장이 나처럼 자전거를 탄다니! 문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당신 자전거를 타느냐’고 물으니 학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자전거 타는데 왜? 네덜란드 총리도 자전거 타고 출퇴근해.”

작년쯤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정장 입고 자전거 출퇴근하는 총리’의 나라가 바로 이곳 네덜란드였던 것이다. 아, 하고 가만히 서 있자 손으로 페달을 돌려 타는, 장애인도 탈 수 있는 특수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렇다. 이곳은 자유와 관용의 자전거 나라인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95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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