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푸시 펜던트와 노브라

2018/06/23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한국에서 온 지인과 암스테르담 시내를 걷는 중이었다. 대로변 집 창문에 걸린 분홍색의 무언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푸시 펜던트’(Pussy pendant)였다. 말 그대로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목걸이들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어라? 당황스러운 표정을 애써 숨기고 태연한 척하며 뒷걸음질쳤다. 창 너머로 네덜란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데니스 로젠붐이었다. 조금 민망한 마음에 엄지를 들어 눈인사를 했다. 이튿날 그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다.

‘푸시 펜던트’의 모양은 다양했다. 사람마다 성기 모양이 다르듯 피부 색깔과 크기에 따라 하나씩 손수 만든다고 했다.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색깔의 ‘고환 목걸이’도 있었다. 네덜란드의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그래픽 디자인을 해왔던 데니스는 2년 전 친구들과 남아프리카의 한 축제에 가게 된 것이 이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사실 굉장히 실용적인 목적이었죠. ‘돈’을 가져갈 수 없는 축제였는데 무엇으로 물물교환을 할까 생각하다 친구들이 예술가인 제가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고 했어요. 처음에는 목걸이, 팔찌 등의 액세서리를 생각했죠. 그러다 ‘푸시 펜던트’가 생각난 거예요.”

 

데니스 로젠붐의 푸시 펜던트 www.deniserosenboom.com 제공
데니스 로젠붐의 푸시 펜던트 www.deniserosenboom.com 제공

 

그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것이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업실에서 한두 블록만 지나면 딜도는 물론이고 각양각색의 성인용품이 전시되어 있는 네덜란드 특유의 성인용품점 거리가 있었다. 성노동자들이 일하는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바로 지척이었다. 축제 이후 그는 전세계에서 엄청난 양의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반응이 굉장히 다양해요. 대화하다 ‘혹시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고 묻기도 하고, 당황하거나 민망해하고 우스워하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물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어요. 기분이 나쁘냐고요? 아뇨.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예술가로서 너무 흥미로워요. 대화를 촉발하고 일으킨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바로 예술이죠.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물어요. 왜 ‘푸시’냐고.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왜 안 되는데요?”

데니스는 저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성을 축하해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움’을 하나의 무언가로 단언할 수 없듯이 저마다의 독특함과 고유함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가 어떻게 가지각색의 목걸이들을 만들어왔는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 제작 의뢰가 들어온다고 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은 이들이 성기 사진을 찍어 보내면 그 모양 그대로 목걸이를 만들어 배송한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젠가 특강을 하러 갔는데 자신이 주문 제작을 받아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쳐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을 때라고 했다.

최근 한국에서 ‘불꽃페미액션’이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탈의 시위를 했다. 논란이 거셌다. 그러나 그건 그냥 ‘몸’이다. 오래전부터 ‘노브라’ 생활을 해왔던 내게 사람들은 왜 젖꼭지를 드러내고 다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남동생의 젖꼭지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노브라에 푸시 펜던트, 젖꼭지가 훤히 드러나는 딱 붙는 스웨터에 하이힐을 신은 채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아무렇지 않은 이곳 네덜란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곳일까? 데니스의 말처럼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일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0262.html#csidx9cd4336aa95f74eb1094b6031cff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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