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헷갈리니까 기다려요”

2018/07/21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멘토가 당일치기 하이킹을 제안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위트레흐트 근교를 걷는 코스였다.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뉴홀랜드 해자를 따라 걸었다. 땅을 파 물이 들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해자를 만들어 네덜란드를 거의 섬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어 체계였다고 한다. 85㎞에 이르는 이곳은 비행기 발명 이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해자 안의 성곽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철도를 놓기 위한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멘토는 설명했다.

물을 따라 걷는 풍경은 참으로 네덜란드다웠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끊임없이 펼쳐졌고 목장에는 소와 말, 양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함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동기들과 시골길을 걸으며 학교 강의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성곽 아래 위치한 아담한 카페에서 걸음을 멈췄다.

날이 좋아 우리처럼 하이킹을 나온 사람들이 야외 테라스에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종업원이 네덜란드어로 인사를 건넸다.

여기 메뉴판 있고요. 마실 거 먼저 드릴까요? 메뉴 설명을 먼저 해드릴게요.”

나는 영어로 대답했다.

저 네덜란드어를 못하는데 혹시 영어로 주문 가능할까요?”

그러자 그녀는 바로 언어를 바꾸어 영어로 메뉴 설명을 했다. 약간 더듬거리긴 했지만 정확한 영어 표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테라스와 카페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녀를 포함한 이 카페의 모든 종업원이 정신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어떤 누구도 나처럼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의 주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았다. 무엇보다 내가 주문한 오렌지 주스와 염소 치즈 샌드위치는 매우 훌륭했다.

점심 식사 후, 멘토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돌려 신호를 보냈다. 아까 우리의 주문을 받았던 그녀는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한 번에 다 못 외우니까 이 주문 받고 나서 그쪽 테이블로 갈게요.”

그러자 야외 테라스에 있던 모두가 웃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멘토는 머쓱했는지 하하 웃으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이 공간은 2015년부터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데 정신적 혹은 심리적 장애가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난민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놀라웠다. 암스테르담 도시에서 어떻게 알고 찾아간 것도 아닌, 하이킹 코스 도중에 우연히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다니!

잠시 후, 그녀는 다른 테이블에서 받았던 주문을 처리하고 우리 테이블로 유유히 다가왔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주문을 받는 그녀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그것이 특별하거나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걷는 도중 만날 수 있는 어떤 한 카페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너무나 대단했다.

하이킹을 마치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니 유독 손으로 타는 자전거들이 많이 보였다. 하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타는,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자전거였다. 전동 휠체어 역시 빠지지 않았다. 두세명의 아이는 넉넉히 싣고 달릴 수 있는 카고 바이크(큰 짐을 싣는 자전거)는 언제나 함께였다. 나는 그 사이로 나의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느긋이 집으로 향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4205.html#csidx683685df8888845b7a4ce77dadb69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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