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열린 질문

2018/12/0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네덜란드 영화학교에서의 세번째 학기를 여는 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의 관심사는 온통 한국에 있는데 현재 네덜란드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나는 어떻게 나의 연구를 해나갈 수 있을까?”

이곳에서의 매 학기는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하여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를 통한 예술적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건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것뿐 아니라 연구자, 멘토, 교수, 조교들이 한팀이 되어 그 과정을 돌아보는 것에 있다. 그건 단순히 연구자의 발표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발표자와 의견을 주는 사람, 그것을 듣고 있는 모든 그룹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나의 질문에 한 교수가 물었다.

“‘한국’이 뭐죠? 한국 영토 안에 있는 것만 한국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디아스포라는요? 저는 이스라엘인인데 유럽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작업을 할 수 없는 걸까요?”

어렸을 때 파리로 이주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작업을 해온 영화감독 에얄이었다. 학장이 손을 들었다.

“지금 보라가 가지고 있는 건 한국과의 물리적인 거리인데, 그걸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한국에서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 하지 못했던 것들, 사실 그걸 하려고 지금 이 시기에 여기로 유학 온 것 아닌가요?”

아차,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막상 연구에 진척이 없어 속상하던 터였다. 학기를 시작하는 가장 첫 일정인 ‘피드백 세션’은 그룹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통해 나의 연구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들을 던져줬다.

그리고 어제, 학기 말의 최종 발표를 앞두고 이제까지 해왔던 연구와 작업을 돌아보는 피드백 세션이 있었다. 모든 연구자는 각자의 질문을 준비해야 하고, 석사과정의 모든 구성원은 필수로 참가해야 한다. 학장과 조교도 피할 수 없다.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상황을 공유하고, 현재 당면한 질문을 던지면 구성원들은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에 대해 무엇이 좋았는지 돌아가며 얘기한다. ‘긍정적 피드백’이라 부르는 피드백 방법 중 하나다. 다음은 관점을 이용해 의견을 줄 차례다. 가령 “큐레이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이것이 더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양이의 관점이 될 수도 있고, 외계인의 입장에 설 수도 있다. 단순히 ‘나’가 주는 의견뿐 아니라 영화 프로듀서의 관점에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지, 기자의 입장이라면 어떨지 등에 대한 관점에 따른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다음은 ‘열린 질문’이 있다. 닫힌 질문은 어떤 방향으로 답을 안내하는 폐쇄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가능성을 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령 학장이 내게 한 질문이 그렇다. ‘한국과의 그 물리적 거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용할 수 있을까?’

다른 피드백 방법으로는 개념을 통한 반영, 소문, 정보 혹은 속임수, 사적 편지 등이 있다. 연구자는 자신에게 맞는 피드백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한다.

어제의 내 질문은 이것이었다. 기획 중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나는 꼭 한국에 가야만 하는가. 학장은 물었다.

“그건 예,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닫힌 질문이죠. 열린 질문을 해보겠어요?”

나는 고민하다 대답했다.

“한국에 가지 않고 이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말을 끝내자마자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3536.html#csidx7f5644bc7e3f5fab304fc776e639f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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