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몸의 기억

19/02/02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친구 둘이 놀러 왔다. 한명은 5개월간의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곧 1년이 되는데 돌아가고 싶지 않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고 했다.

“한국 식당에서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보통 받는 시급보다 조금 덜 받아요. 그런데 그냥 여기서 평생 설거지만 하며 살아도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행복할 것 같아요.”

곧 돌아가는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 살 빼려고 다이어트했었는데 그때 좀 우울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다들 내 외모에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내가 뭘 입든 어떻게 생겼건 말이에요.”

그녀는 우리 집에 한번 와본 적이 있었다. 내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한국에서 단기간 유럽여행을 온 친구와 여기서 며칠 지냈던 것이다. 그녀는 네덜란드 특유의 큰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 창문 블라인드 좀 무섭지 않아요? 그때 한국에서 온 친구가 이 사이로 누가 쳐다볼까 봐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어, 아니요. 거의 다 가려지잖아요. 뭐, 살짝 보이기도 하는데 다 열어놓고 있어도 아무도 안 쳐다봐요.”

대답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아차, 싶었다. 불과 1년 반 전, 네덜란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 역시 그랬던 것이다. 이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젠더중립화장실에 남성들과 함께 들어갈 때마다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몰래카메라가 있을까 봐 두리번거렸다. 집마다 있는 큰 창문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는 이곳에서 조금의 햇빛이라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크기가 너무 커 누군가 망원경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줬다. 블라인드를 내리면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우울했지만 누가 내 몸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것도 불안해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혹시 쳐다보지는 않을까 먼저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그러나 다른 집들은 늘 커튼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집 안을 쳐다보고 구경하지 않았다. 큰 창으로 내부가 훤히 보여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그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것. 그게 네덜란드의 문화였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다가 차와 부딪힐 뻔한 적이 있었다. 운전자를 확인했다.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가 문을 박차고 나와 쌍욕을 할 거라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졌다. 그렇게 몇초가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자는 개의치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몸은 한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 가까이 오면 몸을 움츠린다. 남성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가 팔을 뻗어 나를 만질 수도, 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걸음을 멈추거나 빨리 걸어 안전한 거리를 만든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후 깨닫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이곳에서 살았던 1년 반, 내 몸이 두려워하는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음을 상기한다. 나의 몸은 막 이곳에 도착한 그녀들의 몸에 비하면 긴장이 많이 풀린 편이지만 여기서 나고 자란 이들의 몸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몸의 기억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각도만 조절하던 블라인드를 전부 올리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지만 무엇보다 누군가 나를 훔쳐보지 않을 거라는 걸 배워서다. 나의 몸은, 몸의 기억은 그렇게 천천히 변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0895.html#csidxb265fe7465cf2f59a1424dad2c46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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