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남북의 손말·수어

19/03/02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베를린에 다녀왔다. 농인 디자이너이자 활동가 조혜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거처를 옮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북한 농인을 돕는 단체 ‘투게더 함흥’과 한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추진하는 손말수어 프로젝트다. ‘손말’은 수화언어를 뜻하는 북한 말이고 ‘수어’는 수화언어의 줄임말인 남한 말이다. ‘손말수어’는 말 그대로 ‘손말·수어를 통한 남북의 연결과 이해,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다.

북한과 남한의 수어는 다르다. 분단 이후, 남북한의 음성언어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듯 농인의 언어인 수어 역시 다르게 변해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통역사 없이 소통할 수 있었지만, 북한과 남한의 농인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통역사가 필요하다. 음성언어 사용자들은 남북의 언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여러 방법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농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두 언어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소통이 어려운 정도가 된 것이다. 비록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긴 했지만,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는 그 놀라운 가능성을 앞두고 있는 지금, 정작 남북의 농인은 통일이 되어도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가볍게 안부를 묻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회사를 다니며 생계를 이어왔던 혜미씨는 한국에서 ‘청각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걸 깨닫고 덴마크로 유학을 떠났다. 국제 수어를 배워 전세계 농인들을 만났다. 한반도를 벗어나 이렇게 많은 농인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자 혁명이었다.

“20대 초반에 돈이 없어서 치어리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떤 노숙자 한 분이 귀가 안 들리냐고 묻는 거예요. 너무 불쌍하다고, 안 들리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하냐며 주머니에서 빳빳한 돈을 꺼내 주더라고요. 30만원이었어요.”

냉큼 그 돈을 받았다며 그녀는 웃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혜미씨는 졸업 후, 한국이 아닌 독일로 향했다. 북한 농인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음을 깨닫고 ‘투게더 함흥’과 함께 남한 수어와 북한 손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시작했다.

남북한의 수어를 소개하는 영상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다섯편이 만들어진 이 영상에는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첫번째로 화자는 국제 수어를 사용한다. 화면분할을 통해 남한의 수어와 북한의 손말이 비교되어 제시된다. 자막은 영어와 한글 문자언어로 제공된다. 이 짧은 영상에 무려 다섯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 언어들 사이를 가볍게 넘나들며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농인들은 자신의 수어를 기반으로 다른 수어를 빠르게 습득하는데 이는 청인이 다른 음성언어를 배우는 것에 비해 훨씬 빠르다.

오른손 바닥으로 주먹을 쥔 왼팔을 쓸어내린 후, 두 주먹을 쥐고 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여 가슴 앞에서 아래로 내리는 동작은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수어다. 다행인 건 북한의 손말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남북의 농인들은 청인들보다 빠르게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여 소통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해체하고 있는 분단의 긴장, 또 다른 방식의 연대. 그것을 기반으로 찬란하게 꽃피울 농문화와 손말·수어를 기대해본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4192.html#csidxa11def139889e4a86ba35d6d8ba2d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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