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부채감의 사회
2017/08/05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열아홉 살의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 본 몇몇의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중 하나는 김일란 감독의 <3×FTM>이었다. 세 명의 에프티엠(FTM, Female To M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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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5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열아홉 살의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PD)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때 본 몇몇의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중 하나는 김일란 감독의 <3×FTM>이었다. 세 명의 에프티엠(FTM, Female To Male.
2017/07/0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농인 부모의 아름다운 세상을 딸의 시선으로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지난달 일본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개봉을 했으니 2년 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영화의
2017/06/10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일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 여행 온 그를 만났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가볍게 만나 커피 한잔 하려던 우리는 계획을 바꿔 밥을 먹었다.
2017/05/13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지난달, 네덜란드의 영화학교 입학 면접을 보던 날이었다. 눈이 파란 교수가 다음 프로젝트로 어떤 걸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헬조선과 미소지니”라고 답했다.
2017/04/15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몰카’를 당한 적이 있다. 모 영화제에서 관객 숙소로 사용하는 유스호스텔의 공용 샤워실이었다. 옷을 벗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그 사이로 핸드폰을
2017/03/1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나의 20대는 이명박, 박근혜였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8개월간 배낭을 메고 동남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그래도 다음에는 투표권이 생기니까, 그때는 꼭’
2017/02/1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얼마 전, 이사를 했다. 공기도 좋고 동네 분위기도 맘에 든다. 성북구의 공공주택인 이곳엔 다양한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아직은 서먹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2017/01/14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며칠 전, 홍콩에 다녀왔다. 함께 간 친구는 생리컵이 필요하다고 했고, 우리는 시내의 한 성인용품점에 들렀다. 매장에 들어서니 파스텔톤의 섹스 토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커플이 진지하게
[토요판] 뉴스분석 왜?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동들, 코다가 여는 세상 2016/12/10 이길보라 독립영화 감독·작가 이길보라(오른쪽)씨와 코다 코리아 회원들. ‘코다’를 수화로 표현했다. 코다 코리아 제공 ▶ 청각장애인인 부모 밑에서 자란
2016/12/17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2008년, 열아홉살의 나는 촛불을 처음 들었다. 때는 이명박 정권이었고 나는 로드스쿨러였다. 정부의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