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삶의 창] 탄핵: 박힌 것을 빼내다
2016/11/19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이러려고 한국에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어 집회에 나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크린 우측 하단의 수어통역 영상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지지하고 싶었다. 어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CODA | ARTIST
2016/11/19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이러려고 한국에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어 집회에 나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스크린 우측 하단의 수어통역 영상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지지하고 싶었다. 어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2016/10/22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나는 낙태를 했다. 나의 어머니 또한 낙태를 했다. 나의 할머니 또한 낙태를 했다. 사실 나는 할머니가 지우라고 한 아이였다. 첫째였는데 여자아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가
2016/09/24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이제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집안의 유일한 장남인 동생이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해서 집에 내려가지 못한다고 했다. 집에는 할머니, 엄마, 아빠, 작은아빠,
2016/08/20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아빠는 농인 국제 교류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농인이 세계 곳곳을 수어로 소개하는 내용의 비디오를 보며 외국의 농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건 여행을 할 때도
2016/07/23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나는 코다(CODA)다.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일컫는다. 엄마, 아빠는 내게 수어를 가르쳤고 나는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음성언어가